
무더위가 가고 다시 단풍놀이객들로 붐비는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전국 국립공원 내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해마다 등산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등산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오르는 인구가 1560만명에 이르고, 매일 간다고 응답한 사람도 86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같은 등산인구의 급증으로 산림생태 파괴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등산과정 중 등산스틱 과다 사용으로 흙이 유실되고 이로 인해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있지만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최근 정상중심형 알파인등정에서 수평적 휴양문화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에 의해 둘레길 조성이 늘었지만 이곳에서도 등산스틱은 늘 따라다닙니다. 물론 불편한 몸 때문에 장비의 도움이 필요한 노약자들도 있겠지만 대다수 건강한 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등산스틱은 산림 생태계 입장에서는 흉기나 다름 없다는 지적을 낳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는 본래의 휴양 의미를 점검하고자 [비즈월드] 에코탐사팀은 서울 근교 산을 찾아 등산스틱 과사용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숲이 내게 이른다, “흔적없이 다녀오라”-등산스틱 과사용, 산림환경 파괴 심각
-잘못된 등정 문화가 스틱사용 부추겨, 등산로 곳곳 나무뿌리 드러난 채 '신음'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전후를 비교해 보면 2013년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4693만2000명이었던 것이 2016년까지 소폭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4727만7000명으로 다시 정점을 찍었습니다.
레저용품 시장은 세계적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40%의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다가 등산인구 감소세와 맞물려 2014년 이후 등산용품 시장규모 역시 축소됐지만 다시 등산객이 늘면서 감소폭 역시 둔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등산은 성수기/비수기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산과 숲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여기에 꽃놀이 철이나 단풍철이라도 만나면 국립공원 등산로는 차례를 기다려 줄지어 오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서울 근교 도봉산만 해도 포대능선 구역을 일방통행로로 지정해야 할 만큼 자연은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또 그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것이 현실입니다.
“발목에 부담이 덜 가고 무릎관절에 좋은 것 같아요.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산을 오르는 것 같아요.”
정선미(38, 주부)씨는 양손에 T형 등산스틱을 짚고 북한산을 오른다고 합니다. 그녀 역시 매일 산을 찾는 86만명 중의 1인 입니다. 등산을 시작한 이후 건강도 좋아지고 특히 다이어트 효능을 봤다며 등산예찬을 늘어놨습니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는 그녀 역시 등산스틱 고무마개를 제거하고 산을 오른다.
"구입 후 고무마개를 제거하고 산에 오느니 덜 미끄러지는 것 같아 별 고민 없이 마개를 벗겨 냈다”는 선미씨의 답변처럼 스틱 뾰족한 철심이 미치는 해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게 일반적 의식 수준입니다.
등산스틱은 관절에 도움이 되는 필수장비라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는 반면 흙과 식물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장치라는 인식을 가지는 이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고무마개를 제거한 채 철심 만으로 오르면 산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당연히 뾰족한 침봉으로 인해 땅이 두더지가 파해 친 것 마냥 황폐해 집니다. 강도가 약한 돌이나 바위가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드러운 토질의 흙과 모래가 유실돼 등산로 주변 토양이 과도하게 다져지고 이로 인한 식생에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과도한 등산인구 유입으로 말미암아 등산로가 넓어져 식물이 자랄 공간은 줄어들고 등산화로 다져진 토질은 공기가 통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나무뿌리까지 산소가 전달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 때문에 원활한 산소공급을 위해 스스로 땅 밖으로 뿌리를 뻗는 변화를 불러오고, 보행에 지장을 주는 것과 함께 나무가 고사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생태학자들은 스틱 사용인구가 적을 때에는 훼손 정도가 미미했지만 등산인구 2000만명을 넘어선 현실에서는 산림생태계를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용품 업체는 등산스틱 사용에 대한 정확한 사용법과 환경부하에 관한 일정한 경고 없이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며, 5000원 안팎이면 구입 가능한 외국산 저가 스틱의 물량공세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4400개에 이르는 전국의 산 입구나 1만8000개에 이르는 온라인산악회나 동호회 어디에도 등산스틱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 인터넷카페에 등록된 글 하나가 지금의 잘못된 등산문화를 꼬집고 있어 소개합니다.
“산을 무대로 살아가고 즐기는 사람들이 그 무대가 아파하고 신음하는 데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도대체 산은 누가 지킵니까? 말로만 자연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등산스틱의 장점과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스틱사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부 아웃도어 업체들이 유명인을 앞세워 필요 이상의 홍보전을 펼친 결과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올바른 산행문화에 대해 이시형 전 산림치유포럼 회장은 “(이제) 등정 후 성취감이나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일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며 마음을 곧추세우는 수양의 공간으로, 여가선용과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자연친화적 활동으로 등산이 변해야 한다”며 “산과 숲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바꿔야 할 때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등산 행위를 위한 쓰레기 발생은 수거하면 될 일이지만 토양 유실은 복원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그 뿌리에 상처가 나서 고사하는 일은 산을 터전 삼아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며, 사람 역시 그 생태계의 한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분별한 등산스틱 사용은 이로울 것이 없는 행위로 보입니다.
2년째 회원들과 함께 쓰레기수거 산행을 즐기고 있는 강희정산악회(다음카페) 준모씨는 "자연친화적 등산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몰라서 습관적으로 등산스틱을 사용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홍보활동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대부분이 스틱 사용을 자제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정상등정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스틱사용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수평적 걷기를 즐기는 것도 사용량을 줄이고 산과 숲을 보호하는 한 방편”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평소 회원들이 산을 찾을 때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나자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으며 음식물도 습식보다는 건식을 준비해 음식물쓰레기나 찌꺼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염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산악회 활동 방식을 공개했습니다.
물론 등산스틱이 노약자에게 제3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인들은 등산스틱을 사용하면서까지 무리한 산행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등산스틱을 사용해야 한다면 '고무마개'를 꼭 착용하고 산을 오를 것을 권장합니다.
“전국의 산과 숲이 신음하고 있다. 등산스틱을 자제하는 일은 곧 환경을 살리는 작은 첫 걸음이다. 흔적없이 다녀오는 것이 자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자연 속에서 평화를 찾자.” 단풍시즌을 앞둔 산행문화에 전하는 [비즈월드]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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